항공기의 역사(발전 과정)
항공기의 역사(발전 과정)
지금의 대형 여객기 상용화되기까지 수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오늘 포스팅은 항공기의 역사, 그 발명 과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1485년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Ornithopter
-나선형 비행체
(이론상 Design)
천재적인 미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85년 항공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Ornithopter(고대어 bird + wings)를 이론적으로 그려냈습니다.
물론 실제로 구현되지 못했으며 지금에서 실제로 제작을 한다고 해도 비행은 어렵다고 하지만
당시에 인간이 하늘을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주 놀랄만한 업적입니다.
1505년 경에는 헬리콥터 날개의 원리가 된 스크루(screw) 방식의 비행장치를 고안해냈습니다.
드릴이 회전해서 땅을 뚫는 모습을 보며 ‘이 회전력으로 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에서 기초했다고 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Design으로, 수직 방향으로 우선 날아오르자는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오늘날의 헬리콥터 날개는 나선형 모양을 2개로 나누고, 역회전을 주어 헬리콥터 프로펠러를 만들고 있습니다.
②1783년 몽골피에 형제
(좌)형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1740~1810)
(우)동생 자크 에티엔느 몽골피에(1745~1799)
열기구 발명
-인류 최초의 “비행”
(무동력 비행)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 실험을 시작한 것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들 형제는 주머니 형태의 물건에 기체를 넣어 하늘에 띄우고 싶어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하늘을 나는 것은 없는 상태였지요. 형제는 실험 중에 불을 피워 연기를 주머니에
넣을 때 주머니가 날라간다는 현상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기구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실험 끝에 유명해진 형제는 1783년 6월,
베르사유 궁전에서 국왕 루이 16세 앞에서 열기구를 띄우게 됩니다.
다만 이 때까지는 아직 인간이 열기구를 탑승하지 않고 동물을 태워 약 440m 높이를 날았습니다.
이후 1783년 11월, 결국 인류 최초의 유인비행에 성공합니다.
③1891년 오토 릴리엔탈(1848~1896)
행글라이더
-조종장치로 “활공 비행”
(무동력 비행)
어린시절부터 새의 비행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 릴리엔탈은
결국 1891년 조종하는 장치(바, bar)를 장착한 글라이더를 제작해냈습니다
새의 날개를 공기역학적으로 분석했으며 직접 약 2000회의 비행을 하며 실험을 했습니다.
결국 1896년 비행 실험 중 15m 높이에서 추락하여 안타깝게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유인 비행기 개발에 큰 동력이 되었던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④1903년 라이트 형제
형 윌버 라이트 (1867~1912)
동생 오빌 라이트 (1871~1948)
최초의 “고정익” 항공기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
(가솔린 기관)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여 자전거 연구를 계속해오던 라이트 형제는
독일의 릴리엔탈이 글라이더 실험을 하다 사망한 소식을 듣고 항공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글라이더로 시험비행을 하며 데이터를 쌓고 기술을 쌓았고,
결국 형제는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플라이어 호”를 통해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첫 비행은 1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과 불과 수백 미터의 짧은 거리였지만
전 세계가 항공기 개발에 관심을 갖게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⑤1939년 폰 오하인(1911~1998)
최초의 제트비행기
(휘발유 연료, 제트엔진)
폰 오하인은 대학에서 제트엔진에 대한 논문을 쓰며 공부했고,
당시 유명했던 항공기회사 대표, 에른스트 하인켈의 지원을 받아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지속된 개발 후에 휘발유를 사용하는 제트엔진을 개발해내고,
이 엔진은 “하인켈 178” 비행기에 장착되어 1939년 결국 최초의 제트엔진 비행기의 비행에 성공하게 됩니다.
당장 상용화되지는 못했으며 1944년,
독일 공군기 “Me-262A(Messerschmitt Me 262)”가 최초로 실용 전투기로 등장하게 됩니다.
⑥1949년 Havilland사 Comet [영국]
최초의 제트엔진 “여객기”
-승객 정원 36명
세계 최초의 제트여객기는 영국의 드 해빌랜드사(De Havilland)가 설계, 제작한 코멧(Comet)입니다.
정원은 4명의 승무원, 36명의 승객으로 아주 적은 인원만 탑승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코멧은
1953년 5월 기체 공중분해 사고 1954년 2건의 공중폭발사고
발생에 따라 안전성에 심각한 불신을 가져오게 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비행기를 처음 만들 당시에는 "피로(Fatigue)"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의 창문을 네모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네모 창문이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비행기가 지상에 있다가 높은 상공에서 비행을 반복하다 보니
기압차가 누적된 동체에 피로(Fatigue)가 쌓여 유리창에 균열(Crack)이 가기 시작했고,
이 Crack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비행기가 공중폭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고 이후 모서리를 둥글게 한 지금의 둥근 창문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후 문제점을 개선했으나 신뢰를 잃은 해빌랜드사는 미국 보잉사의 등장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⑦1958년 보잉(BOEING)사 [미국]
제트엔진 “여객기” 대중화
-승객 정원 147~202명
코멧은 기체가 작아 약 40명의 인원 밖에 탑승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으나
1958년 BOEING사의 여객기 B707은 약 200명을 태울 수 있는 항공기로 제작되었으며
개인 독서등, 송풍구, 산소마스크 등 기본 필수 장비들을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내부 공간에 따른 기내 안락함과 탑승 인원 증가에 따른 비행기 이용 비용 감소에 따라
본격적으로 항공 여객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